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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국 상응 조치로 나진-하산 프로젝트 검토 가능”
글쓴이 : 연구소 작성일 : 2018.09.28 10:10:20 조회 : 17,187

[이슈&인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인터뷰

 

“가장 좋은 방안은 나진-하산 프로젝트입니다. ‘일석삼조’ 효과를 거둘 수 있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세 사람 모두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셈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최근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미간 협의가 한창인 상황에서 북측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에 대해 이같이 대답했다. 그는 그러면서 “무엇보다 북한에 일종의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는 제스처를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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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러시아 극동의 하산역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철도 개보수와 나진항 현대화 사업 등을 골자로 하는 프로젝트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평가된다.


송 의원은 이와 함께 천안함 사태 이후 꽉막힌 남측의 제주 해역 항로와 북측의 서해 항로 문제를 스와프방식으로 해결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인터뷰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1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그의 사무실에는 세계 지도와 함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푸틴 러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과 악수를 하거나 함께 웃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송 의원은 인터뷰 내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러시아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했다가 막 귀국한 직후여서다. 다음은 송 의원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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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상응 조치’로 나진-하산 프로젝트 가능…제주-서해항로 스와프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11∼13일)에 다녀오셨는데, 분위기는.


=“너무 안타깝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겪으면서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꼬였다. 이 대통령 재임 당시 메드베데프 러 대통령과 러시아 가스관 국내 도입을 합의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그럴듯한 명패만 걸고 아무것도 안 했다. 그사이 엄청난 규모의 중국 자본이 러시아에 진출했다. 중국은 전날만 해도 러시아와 70건이 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일본도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이 투자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직접 포럼에 와서 러시아에 적극 구애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매번 미국의 경제 제재를 핑계로 소극적 자세만 취하다 보니 어느새 일본에 밀렸다. 정부가 미국 눈치를 너무 본다. 알아서 기는 모양새다.”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거론되는 미 측의 ‘상응하는 조치’로는 무엇이 좋을까.


=“가장 좋은 방안이 나진-하산 프로젝트이다. 일석 3조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 김 위원장, 푸틴 대통령 셋 모두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셈이다. 남북러 3자 협력 사업이니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미국 내 강경파 설득이 수월하다. 나진항은 이미 유엔 제재 대상에서 제외돼 있으므로, 남북에 대한 단독 제재를 풀어주면서 러시아를 비핵화 협력에 끌어들인다는 명분이 있다. 무엇보다 북한에 일종의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는 제스처를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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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부터 풀 수 있는 조치는 없을까.


=“북한 선박의 제주 해역 통과를 허용해주는 것이다. 북한의 청진·나진·선봉에서 해주 쪽으로 화물을 운송할 때 육로 상으론 인프라가 없어 힘들다. 그래서 선박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제주 해역이 막혀있어 제주도 밖 태평양으로 쭉 돌아가야 한다. 200마일은 더 가는 셈이다. 기름값도 많이 들고, 풍랑이 세서 작은 배는 운항도 못 한다. 이미 2005∼2010년 사이에는 북한 선박이 제주 해역을 670여번 통행했다. 천안함 사태 이후 5.24 대북제재 조치로 제주 항로가 막혔다. 북한은 보복 조치로 우리 항공이 북한 영해를 통과하지 못하게 막았다. 우회해서 가야 하므로, 러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데 30분에서 1시간이 더 걸린다. 이 두 가지를 스와프(swap)하자는 것이다. 유엔 제재와는 상관없는 남북만의 얘기 아닌가.”


―비핵화를 둘러싸고 남북미 협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중·러가 적극 힘을 보태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은 보태고 있다. 다만 북미가 서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북한은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경제 제재 해제를 주장한다. 미국은 선 핵 폐기를 요구한다. 사실상 미 측에서 일부라도 제재를 해제해줘야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텐데, 미국은 가만히 있으면서 북한은 핵 리스트를 신고하라고 하면 협상이 쉽게 되겠나. 동시에 총을 내려야지, 한쪽만 총을 내리라고 하면 논의가 안 된다. 이미 북한이 비핵화를 공식 선언한 것 자체가 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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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오른쪽)이 지난 1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승진 기자

 

―국회에 제출된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의 비용추계서가 ‘눈가림’ 논란이 있다.


=“그 비용이 얼마나 든다고 그러냐. 통일비용을 선제적으로 줄이는 셈이다. 철도를 깔아놓으면 통일되면 다 쓰는 것 아니냐. 철도를 까는 건 북한에서 퍼오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모래, 석탄, 철광석, 석회석 등 북한에 퍼올 게 많다. 북한 산림녹화지원도 빨리하면 할수록 추후 비용을 감소시킨다. 심은 나무가 산림자원이 되려면 적어도 30년은 걸리지 않느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 대 배치에 2조원가량 든다는데, 3000억원 가지고 왜 이러느냐. 남북관계 풀리면 한미 합동군사훈련에서 전략자산 전개하는 데 드는 5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런 비용은 왜 안 따지느냐.”

 

 

―동북아 평화협력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유가 뭔가.


=“절 보면 ‘대륙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나. 하하. 현재 우리나라는 섬처럼 갇혀 있다. 대륙으로 연결되는 게 국민의 꿈 아니겠느냐. 육지로 소통하는 나라로 거듭나야 한다. 저는 항상 한반도가 이탈리아 반도가 될 거냐, 발칸반도가 될 거냐의 선택의 기로 있다고 본다. 이탈리아 반도는 지중해 해양 세력과 유럽 대륙 세력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으로 로마의 번영을 이뤘다. 그러나 발칸반도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민족 간 분쟁으로 1차 세계대전의 시작점이 됐다. 지금까지도 ‘유럽의 화약고’이다. 지금 한반도는 동북아의 화약고가 될 것이냐, 아니면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지로서 번영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항상 그렇게 대륙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동북아 평화협력의 선결 조건은 무엇인가.


=“남북관계를 푸는 것이다. 보수 세력들은 항상 문제가 생기면 한·미 동맹 강화를 얘기한다. 저도 강조하는 바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필요조건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방해하면 동북아 평화는 사실상 없다. 독일 통일의 주역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통일 당시 조지H부시 미 대통령,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친밀하게 협의하면서도 소련의 고르바초프,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통독이 소련의 이익에 반하는 적대 국가가 되지 않을 거라고, 동독 지역에는 미군이 진주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설득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남북 간 화해·협력이 미국의 군사기지가 이북 지역까지 확장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중·러를 설득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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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이런 고민을 가졌나.


=“중학교 2학년 때 역사 시험을 봤는데, 신라 삼국통일 의의를 묻는 문제에 ‘영토의 축소’라고 답하니 틀렸다더라. 답이 뭐냐니 ‘단일민족 형성’이라더라. 역사 선생님께 강력하게 항의했다. 아니, 통일신라는 대동강 이북 지역을 다 뺏겼으니 영토의 축소 아니냐고. 중학생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외교관의 꿈을 키웠다. 우리 민족이 분단의 고통에 빠진 것은 주변 4대 강국을 잘 못 다뤄서라고 생각했다.”


―전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현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 특별위원장을 맡았다. 트레이드 마크인 ‘나선경제특구’는 동북아 평화구상의 첫걸음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국이 러·중과 협력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나진-하산이다. 또 남·북·중이 협력 가능한 사안은 신의주-단둥 통합경제특구를 만드는 것이다. 제 구상은 개성·해주·인천을 홍콩·심천·광저우처럼 삼각 무역지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나진-하산은 이미 러시아가 애정을 가지고 추진해왔다. 나진항은 자연적으로 파도가 1m 이상 높아지지 않는 정온수역이자 부동항이다. 끝내주는 항이다. 러 입장에서도 동해를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항구이고, 중국의 동북 3성 물류도 나진항을 통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여러모로 우리나라가 대륙으로 진출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가 여기만큼은 유엔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러시아 석탄 반출에 한정돼 있다. 이거라도 먼저 풀자는 게 제 구상이다. 석탄 수출을 빨리 재개하고, 석탄만으로는 부가가치가 낮으니까 컨테이너를 실어 날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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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그룹이 세대교체 못 한 건 부끄러운 일”


―얼마 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아쉬운 2등을 차지했다. 선거가 끝난 뒤 ‘의외다’ ‘졌지만 잘 싸웠다’와 같은 의견이 많았다.


=“전국에 낙선인사를 다녔는데, 축하한다는 사람이 많아서 참 당황했다. 2등 했다고 축하를 받으니 그만큼 씁쓸하고. 느낀 점은, 우리 당이 너무 노쇠해졌다. 주류 세력의 눈치를 보는 게 참 안타깝다.”


―초반 ‘이해찬 대세론’이 선거 분위기를 지배했지만 실제 과정은 치열했는데.


=“무조건 제가 될 줄 알았다. 당선 연설문까지 열심히 썼다.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막판에 오더를 받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전당대회장에 나타났다. 모든 대선 주자들이 이해찬 대표를 밀어줬다. 추미애·이재명·김부겸부터 김두관·박원순까지 다 그랬을 것이다.”


―2016년 전당대회 예비경선 탈락 때도 ‘지지세력은 가장 넓지만 확실한 우군이 없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하더라.


=“그래도 이번 선거에서 일반당원투표는 1위 후보와 고작 1%포인트 차이였다. 대의원 투표는 그들이 기존에 지지하는 대권 주자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결국 조직에서 밀린 것이다. 하지만 어디 있던간에 이번 정권은 문 대통령을 성공시키는데 복무하고자 하는 확고한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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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핫이슈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배우 김부선씨의 스캔들, 어떻게 봤나.


=“피해를 많이 봤다. ‘수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중립적 자세를 취하다 보니 표가 많이 빠졌다. 당원 중 ‘송영길을 찍고 싶었는데, 이 지사 출당을 막으려면 이 대표를 찍어야겠다’고, 또 반대로 ‘확실한 이 지사 축출을 위해선 김 의원을 찍는게 낫겠다. 미안하지만 송영길은 다음 기회에’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선거 이후 86그룹 내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도 조금 생긴 것 같더라.


=“하하, 그건 언론이 평가할 일이다. 86세대의 힘을 모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이번에도 같은 당 우상호 의원이 적극 도와줬다. 이인영 의원도 암묵적 지지를 보냈다. 최재성 의원도 결국 김진표 의원 쪽으로는 안 가지 않았느냐.”


―86그룹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반대로 이미 기득권화 됐다는 평가도 있다.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이번 전대에서 86그룹이 힘을 합쳐야 했다. 항상 86그룹 의원들에게 “우리가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보다 못하다’고 말하고 다닌다.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은 힘을 합쳐 한 시대를 풍미했다. 셋 모두 당대표를 맡았고, 그중에서 대선 후보까지 뽑았다. 86그룹은 왜 이렇게 못 하느냐 이 말이다. 우리 스스로 뭉쳐야하는데 다들 누구 편으로 갈라져 있다. 그래서 세대의 힘을 폭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86그룹의 단결력 부족이 우리만의 비전을 내세우기보다는 정치 지도자 밑에서 커왔기 때문이라는 자조적 비판도 있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YS(김영삼 전 대통령),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있었는데 우리는 50대나 돼서 눈치나 보고…결국 단결력 부족으로 이번에 당내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 한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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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내 몇 안 되는 적통…날 배제하지 마라”


―노동운동, 인권변호사 등 삶이 드라마틱하다. 무엇이 송영길을 이렇게 살게 했는가.


=“5·18 민주화운동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5·18을 겪었다. 제 친구(전영진 열사)도 그때 죽었다. 저는 그 현장에 있었다. 하루 전인 5월17일 일요일, 대동고에 나와서 입시공부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최루탄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시내에서 난리가 났다더라. 오후 3시쯤 한걸음에 달려가보니 대학생들이 군인들로부터 도망쳐 나오고, 쇠몽둥이를 맞아 머리통이 깨지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이런 것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다음날 아버지가 난리가 나서 다짜고차 전남 고흥으로 끌려 내려갔다. 안 그랬으면 저도 죽었을 것이다. 지금도 죄스러운 마음이 크다. 같이 싸워야 했었는데 저 혼자 살아남았으니까. 그런 마음이 결국 노동운동의 동력이 됐다.”


―86그룹 동료 정치인들을 평가한다면.


=“우 의원은 큰 사람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완성한 것은 추 전 대표가 아닌 ‘우상호 리더십’이라고 봐야 한다.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 의원의 외유내강 리더십이 돋보였다. 최 의원은 전략적 머리, 뛰어난 분석 능력을 갖춘 친구다. 이인영 의원은 김근태 전 의원처럼 진보, 민족 자주에 대한 확고한 소수성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관계를 잘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86그룹 내에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


=“머리가 커서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하하. ‘자기 콘텐츠가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소위 ‘친목질’에 약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원내대표는 못 할 것 같다. 저도 안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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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좋다”는 평도 많지만 만나본 사람은 “조금 거만하다” 등의 인상평도 있더라.


=“얼굴이 커서 그렇다. 하하. 고등학교 때 선생이 지나가다 “송영길이, 너 나한테 기분 나쁘지”라고 묻더라.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너 얼굴을 딱 보니 기분 나빴네”라며 막 때리는 거다. 정말 억울하더라. 제 인상이 그렇다. 가만히 있으면 무뚝뚝하고 무섭게 보인다. 정치판에 와서도 그런 인상평을 들을 때마다 그 선생이 생각난다. 그래서 많이 노력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웃고, 눈썹도 부드럽게 만들고, 안경도 쓴다. 하하. 또 무조건 ‘90도 폴더인사’를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제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다.”


―정치인 롤모델은 누구인가.


=“우선 동향인 월파 서민호 선생. 아버지에게 월파 얘기를 많이 들으며 컸다. 두 번째는 제 지역구 선배인 죽산 조봉암 선생. 죽산의 평화통일론, 진보정치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이후로는 DJ를 보고 현실 정치를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까지 이렇게 5명의 정치인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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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민주정부의 세 대통령은 어떤 영향 미쳤나.


=“DJ는 저보고 외교를 배우라고 했다. ‘햇볕정책’은 다른 게 아니라 ‘4대 강국과 척 지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이라고 하더라. 노 전 대통령은 기존의 파벌과 기득권 구조를 깨려고 했다. 파벌이라곤 없는 제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 하하.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02년 찾아와 둘이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동교동계는 이인제 의원만 이뻐하고 나는 배제하느냐. 나도 DJ 간판을 들고 부산에서 돌 맞아가며 열심히 싸웠는데 왜 권노갑 고문과 박지원 실장은 이인제만 이뻐하느냐’라고 하소연하더라. 이 일화를 이번 전대 과정에서 소위 당내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의원들에게 얘기했다. ‘왜 송영길을 배제하느냐’라고. 2년 전 8·27 전대 당대표 선거 당시에는 제가 문재인 대선 후보에 대한 입장이 불명확해서 당내 주류가 추 전 대표를 민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당에 충성하며 ‘촛불홍보단장’도 도맡아 열심히 뛰었고, 백의종군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는 문 후보 총괄 선대본부장을 맡아 집에도 안 들어가며 일했다. 최근까지는 러시아 특사로 문 대통령을 뒷받침했다. 그런데도 이번 8·25 전대에서 나를 2년 전처럼 배제할 거냐고, 이게 과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시대에 맞는 정당이냐고 외쳤다. 역시나 이번에도 배제됐지만, 문 대통령 지지했던 일반 당원들도 제게 많은 지지를 보내준 건 성과라고 본다.”


―향후 구상 중인 행보는.


=“20년간 정치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탈당을 하거나 당론을 어기면서까지 ‘자기 정치’를 한 적이 없다. 2010년 인천시장 출마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세균 당대표의 ‘너 안 나가면 이길 사람 없다’는 한 마디에 출사표를 던지고 온몸으로 싸웠다. 당내 몇 안 되는 ‘정통성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 직책을 맡던 문 대통령의 성공에 책임감을 갖고 문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의 전철을 밟지 않게끔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대담=김용출, 정리=이동수, 영상=이우주 기자 samenumber@segye.com

 

● 송영길 의원은

△전남 고흥 출생(1963년) △광주 대동고 졸업, 연세대 경영학과 입학 △사법시험 36회 합격, 사법연수원 26기 △16·17·18·20대 국회의원 △인천광역시장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 특사 역임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출처 : 세계일보 http://www.segye.com/newsView/20180927005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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