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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122주년 기념 기고]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는 신의 한 수, 러일 공동보호국화 음모 좌절시켜”
글쓴이 : 연구소 작성일 : 2019.10.14 11:16:41 조회 : 10,208

[대한제국 122주년 기념 기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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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지난해 7월 16일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1897년 10월 12일 새벽 4시, 고종 황제는 환구단에 제사를 올리고 황제 즉위식을 치렀다. 태조, 정종, 태종, 세종, 세조 등 조선조 초기 국왕들이 삼국시대 제천행사를 이은 고려의 전례에 따라 환구단에 정기적으로 제천의식을 하다가 제후국 예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1464년 세조친제 이후 국왕의 환구단 친제가 폐지된 지 433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황제로서 친제를 올린 것은 고려 중반 이후 700년 만의 일이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날이다. 제후국으로 소중화를 자처해 오던 반도의 나라가 ‘감히’ 제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대한제국 선포는 상당히 생뚱맞은 일이었다. 즉위식 날 비가 내렸다고 한다. 윤치호는 “한바탕 쏟아지는 폭우는 그 소극을 한층 더 우습고 한심하게 만들었다”고 비아냥댔다. 임진왜란 때 명군을 파견해 준 명신종과 명조 최후황제 숭정제의 제사를 지내며 대명천지 숭정일월(천지가 대명의 것이고 해와 달이 숭정황제의 것이다)을 외쳤던 송시열, 이항로의 전통적 존명 반청 조선중화론을 계승한 최익현, 유인석 등은 고종의 칭제건원을 반대하였다. 박영효, 서재필, 윤치호 등 친일개화세력 역시 조소를 하였다.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역사책도 대한제국을 폄하하고 독립협회 활동을 부각시키는 기조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대한제국을 다시 공부할 때마다 소중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망해가는 조선 말, 어떤 힘이 칭제건원을 할 수 있게 했고 당시 열강들이 어떻게 승인할 수 있었을까? (러시아 니콜라이 2세를 필두로 일본, 프랑스,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강대국들이 1898년 3월 대한제국을 일제히 승인하였다.) 일본은 지금도 자신들의 왕을 천황이라고 부르고 중국은 천자, 황제라고 불러왔다. 한산도와 통영에 가보면 이순신 장군에게 벼슬과 상을 ‘하사’한 명나라 만력제 신종의 교지 등을 보면 가슴 아팠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못 이뤘던 요동 정복의 꿈이 눈 앞에 왔다고 자축했다. 그런데 고종의 비밀외교활동 영향을 받아 러시아가 주도한 독, 러, 프 3국 간섭으로 요동반도를 토해내야 했다. 이에 일본은 러시아에게 쏟아낼 분노를 을미왜변을 통해 명성황후를 시해함으로써 분풀이를 했다. 고종도 목숨이 위태로워 아관망명을 했다. 러시아는 일시적으로 고종을 도왔지만 일본과 맞서 끝까지 조선을 지킬 의지와 역량이 부족했다. 1896년 6월 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로바노프 야마가타 비밀 협정(모스크바 의정서)을 통해 조선의 공동보호국화를 기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 유림들을 중심으로 칭제건원 상소가 빗발친 것은 송시열 등의 친명사대 차원의 소중화론을 극복하고 자주적인 대청독립 척왜 조선중화론으로 진화, 발전한 자주적인 각성의 결과이다.


고종은 을미왜변으로 국모를 시해한 일본의 극악무도한 범죄행위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활용하여 러일 간 힘의 균형시기를 이용, 대한제국을 선포함으로써 러일 간의 공동보호국화 의도를 좌절시킨 신의 한 수를 두었다. 1898년 4월 러일 양국은 대한제국을 승인한 기초 하에 ‘로젠-니시 의정서’ 제1조를 통해 러일 양국은 대한제국의 완전한 독립을 확인하고 대한제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공히 약속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한제국은 태극기를 공식국기로 채택하고 한글을 공식언어로 확정했으며 신분차별을 없앴다. 1900년 울릉도와 독도는 물론 북간도를 대한제국 행정구역으로 확정시키고 3만의 신식 군대를 양성하여 광개토대왕 이래 최대영토를 확보한 나라를 만들었다.


그래서 3ㆍ1운동 때 조선독립만세가 아니라 대한독립만세가 제창되고 임시정부의 명칭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합의된 것이다. 대한제국을 러일 강대국의 각축 속에 민족의 자주성을 세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이해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로 받아 안아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제국을 팔아 먹은 매국 세력들의 오욕의 역사를 정리하고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민족화해통일의 역사를 이어갈 역사적, 정신적 자산이 만들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출처 : 한국일보(https://www.hankookilbo.com/News/Npath/201910091597028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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