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섭 평화와먹고사는문제연구소 회원
한 때는 잘 나가는 청춘의 상징이었던 신촌, 그리고 그 명맥을 이어받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힙 플레이스 홍대입구. 그 사이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는 어중간한 위치의 언덕배기에 민달팽이 유니온이 자리 잡고 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버느라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는 어중간한 위치의 청춘인 듯 싶다.
지방에서 학업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학생들은 넘쳐나는데,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학교 측에 기숙자 증축을 요구해보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쉽지가 않다. 학교에서 밀려나 자취나 하숙을 하면 싸면 30만원 비싸면 60만원이 집값으로 지출된다. 편의점에서 40시간, 80시간을 일해야 겨우 벌 수 있는 돈이다. 집값과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휴학을 한다.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이제는 왠지 집값을 내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9년, 10년 만에 겨우 대학을 졸업하지만, 번듯한 대기업 일자리를 얻기는 쉽지 않다. 빠듯한 월급으로 빠듯하게 살아간다. 여전히 월세는 소득의 3~40%를 차지한다. YOLO와 워라벨을 표방하지만, 말만 그럴 듯 할 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에 현재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서울에 발을 딛은 그 순간부터 집이라는 존재는 나를 지켜주는 포근한 보금자리가 아닌,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민으로만 다가온다. 그리고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청춘에게는 결혼조차 사치가 되어 버렸다. 결혼도, 출산도, 경기 침체를 주도하는 구매력 저하도 결국은 집 문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뉴스테이 등 청년들을 위한다는 선심성 주거정책들이 있었지만, 그 효과는 미비했다. 온갖 빚을 끌어 모아 집 한 채를 겨우 마련하고, 그 빚의 무게 때문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모습은 달팽이와 같다. 자기 몸보다도 큰 집의 무게에 눌려 힘겹게 하루하루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청춘에게는 나를 짓누르는 그 집마저 없다. 여전히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청년들은 그런 스스로를 민달팽이라 자조했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지기엔 너무 억울했다.
‘당사자 그룹’인 ‘민달팽이유니온’은 실제로 주거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발굴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청년주거문제를 사회에 전달하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에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이를 통해 이전까지 사회에서 주요하게 이야기되지 않았던 실제 대학생, 청년층의 열악한 주거환경, 주거비 부담 등을 이야기하는 당사자 증언을 위한 자리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들이 내세운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다. 포기하지 않았으며,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자 만든 비영리단체다. 2011년 설립되어,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형태를 통해 현재 700여명의 조합원의 협력을 통해 170여 가구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 전주시 등 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해 청년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함께 사는 삶>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선한 의지>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타 비영리법인의 경우에도 늘 고질적인 재정압박에 노출되어 있지만, 민달팽이 유니온의 경우 해결하고자 하는 핵심문제가 재정과 관련된 사항이기에 돈 문제로부터 더더욱 자유로울 수가 없다. 더구나 이익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집단이 존재하기에, 좋은 마음으로 진행하는 사업일지라도 좋은 이야기만 들으며 일할 수 없을뿐더러, 때로는 청년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에 앞장서기도 한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전주에도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집값이 안정적인 지방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할까 싶다. 하지만 전주의 민달팽이는 보금자리 마련보다는 청년 커뮤니티 활동을 위주로 사업을 운영한다. 집을 단순히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때문에 입주 신청 자격에 교육 프로그램 이수가 포함된다. 가난하고 불쌍한 청년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이웃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경쟁자가 없는 것을 아쉬워한다. 몇몇 후발 주자들이 있었지만, 재정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 “덕분에 저희가 버틸 수 있었지요”라며 씁쓸하게 웃지만, 이 사업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어려운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잘 한 것이 아니라, 경쟁자들이 스스로 쓰러졌기에 살아남아 있다며 멋쩍어 하지만, 살아남는 것 자체가 그들의 경쟁력이 아닌가 한다. 비영리 법인으로써 가입자에게 금전적 혜택을 준다는 것이 얼핏 들어도 과연 가능할까 싶은 대목이다. 본인의 집 문제가 아닐지라도 좋은 뜻에 동참하고 싶은 조합원들, 선뜻 본인의 건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분들이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정부로부터의 지원은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모든 청년 문제의 근원으로 볼 수 있는 집 문제. 정부는 여러 가지 청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면서도 왜 정작 핵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송영길 의원이 인천시장 시절 <누구나집 프로젝트>라는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누구나집 프로젝트는 인천을 벗어나지 못했고, 지금은 인천에서도 그 명맥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청년들이 스스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른으로써, 인생의 선배로써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노력하라, 노력해도 안 되면 노오력하라는 잔소리를 하기 전에, 노력하면 그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었는지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인력도 부족하고 예산도 부족하다고 한다. 늘 듣던 이유다. 하지만 지금의 민달팽이 유니온은 7명의 청년이 맨손으로 일구어낸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