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취업과 해외 취업, 특히 신입 채용에 있어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채 제도에 있다고 본다. 경제가 한참 성장하던 시절 좋은 인적 자원을 먼저 확보해, 내부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 방안에 목표를 둔 기업들의 경쟁이 공채라는 채용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물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겠다. 공채 제도를 통해 우수한 인적자원을 사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요즘과 같이 경제 성장을 약속할 수 없는 상황에 공채 제도는 기업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는 공채 제도가 가지고 있는 맹점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한다.
구직란이 심해지고, 청년 실업률이 역사상 최고치를 넘어서거나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뽑을 사람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구직자들은 일자리가 없다는데, 인사담당자들은 뽑을 사람이 없다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필자는 이 문제를 공채 제도에서 찾는다.
삼성그룹에서 약 만 명을 신규채용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몇 명이나 삼성그룹에 지원할까? 경쟁률을 20:1로 봤을 때, 약 20만명이다. 인사담당자들이 과연 이 많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을까? 특히,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고 성향이나 역량 파악을 하려면 최소 10~15분은 필요할 것이다. 한 시간에 다섯 명, 하루 40명의 지원서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속도로 20만 건의 지원서를 확인하려면 5천일이 걸린다. 100명의 인사 담당자가 달라붙어 일을 해도 50일이 필요하다. 주 5일 근무라면 10주다. 서류 검토만 그렇고 면접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기업들은 모든 이력서를 꼼꼼히 보지 않는다. 학벌, 학점, 토익, 자격증 등 소위 스펙으로 이력서를 필터링한다. 이 자동 분류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자들에게만 면접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구직자들의 움직임은 어떨까? 내가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갖추어도 기업은 알아주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공지능에 관심을 쏟고 연구에 몰두하느라, 입시에 소흘 해 좋은 대학을 못 가고, 대학 진학 후에도 창업/발명 동아리 활동에 치중하느라 교양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학점 관리가 안 됐다면, 나의 그 뛰어난 역량을 보여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구직자가 선택하는 길은 스펙 관리이다. 학벌 좋고, 학점 높고, 자격증 따고, 어학연수 다녀오고, 봉사 활동하고… 그러느라 내 꿈이었던 인공지능에 관한 공부는 접어 두었지만, 어쨌든 나는 서류통과라는 열매를 얻게 된다. 그랬더니 면접에서는 스펙만 좋지 역량이 부족하다고 한다.
필자는 해외 취업을 위한 면접을 언제나 1:1로 진행한다. 최소 30분에서 길면 2시간 이상 시간을 할애한다. 한국 구직자와의 면접은 언제나 놀라움으로 시작된다. 완벽한 이력서, 아나운서급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면, 놀라움이 실망으로 변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도 인사담당자인지라 역시나 가장 큰 문제는 면접자들의 역량 부족이다. 뽑을 사람이 없다. 토익 점수가 900점을 넘지만, 영어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려면 2~3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계적인 온라인 마케터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현재 시장 트렌드가 어떤지, 아니 온라인 마케팅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국내 기업 공채는 어떨까? 보통 5명 많게는 10명이 들어가 앉는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미션은 1분 자기소개이다. 온갖 장기자랑이 이어진다. 튀어야 한다. 그것을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커버한다. 1분이라는 시간동안 간단한 자기소개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 소개가 끝난 뒤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소개로 인해 이미 반 이상 합격 여부가 결정 된다. 1분 자기소개에서 튀지 못 하면, 단 하나의 추가 질문도 받지 못하고 면접장을 황망히 빠져나와야 한다. 마케팅을 지원해도, 회계에 지원해도, 설계에 지원해도, 디자인에 지원해도, 구직자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량은 업무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튀는 자기 소개이다. 회사나 직무에 대한 지식을 늘어놓기도 전에, 튀지 못하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추가 질문을 받는다 해도, 회사에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은 5분 이내이다. 심도 있는 업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 기업들도 신입들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그리고는 뒤돌아 서서 이야기한다. 뽑을 사람이 없다고.
많은 기성세대들이 이야기한다. <요새 젊은이들 실력은 좋은데 도전정신이 없다>. 단언컨대, 적어도 글로벌 취업시장에서 이 말은 틀렸다. <요새 젊은이들은 도전하고 싶은데 실력이 안 된다>로 바꾸고 싶다. 젊은이들은 도전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실패했을 때, 어루만져 줄 사회적 시스템이 전무하다. 실패자 낙인을 찍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도전을 망설인다. 또 하나,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코 요새 젊은이들의 실력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공채 맞춤형으로 대학 4년을 보낸 젊은 구직자들에게 세계의 벽은 높다. 미국이나 유럽 업체들은 TOEIC이라는 시험이 무엇지도 모르며, TOEFL도 학문의 목적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국내 기업 입사를 위해 한국어 능력 검사를 받지 않는 것처럼, 영어는 당연히 잘 하는 것이지, 점수로 증명할 만한 무엇이 아니다. (그러면 토익 스피킹 점수가 더 중요한가요? 제발 이런 것 좀 묻지 마라. 다 쓸데 없다.)
외국 기업이 사람을 뽑는 기준은 명확하다. 열정과 패기와 도전정신, 이런 것 다 의미 없다. <우리가 당신을 뽑으면, 돈이 됩니까?> 여기에 명확한 답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가 추구하는 사업의 방향성과 내가 담당하게 될 업무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시험기간에 바짝 공부해서 학점 관리하고, 자격증 몇 개 딴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해당 사업에 대한, 해당 업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경험이 필요하다. 구직자가 준비되어 있다면 기업들은 30분 이상,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당신의 역량에 대해 철저히 파헤칠 준비도 되어 있다. 순위를 메겨 몇 명을 뽑지 않는다. 돈이 된다면 뽑고, 돈이 안 된다면 그 자리는 여전히 공석으로 남는다.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진정 내 역량은 뛰어난데, 학벌이나 기타 스펙 때문에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여지없이 해외 취업으로 눈을 돌리길 바란다. 그 곳에는 당신의 배경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당신에게만 집중할 준비가 된 인사담당자들이 많다. 하지만 혹시 국내 취업이 어려우니, 해외에 나가면 뭐라도 할 만한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로 해외취업시장을 기웃거리는가? 그렇다면 빨리 그 꿈을 접기 바란다. 스펙 경쟁에서 밀렸다는 것을 핑계로 삼지만, 스스로도 스펙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구직자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에게는 개개인의 역량보다는 조직과의 융화가 더 중요하다. 조직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며, 이 시스템을 잘 받쳐 줄 수 있는, 말 잘 듣는 관리형 인재를 선호한다. 그러니 5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합격자를 추려낼 수 있다. 역량이야 아무렴 어떤가? 회사에서 가르치고 기르면 되는 것을. 그러니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말 잘 듣는 인재를 선호한다. 학습능력은 객관적으로 필터링하면 되는 것이고, 말의 내용보다는 말투와 몸짓으로 <버르장머리>를 판별한다. 이런 대기업들이 높은 연봉을 준다. 그러니 구직자들은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공부 잘 하고, 예의 바른 구직자>를 코스프레 한다.
한국 경기는 어렵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일자리의 수가 신규 취업 수요를 따라 잡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해외취업은 정부에게도, 구직자에게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방대를 나온 구직자에게도, 학점이 부족하고, 봉사활동 하지 않고, 외모가 뛰어나지 않는 구직자에게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역량이 뒷받침 되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