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섭 평화와먹고사는문제연구소 회원
모 방송 프로그램 꽁트에서 터진 구직자의 사자후. 웃음을 유발하는 대사였지만, 구직자들로서는 마냥 웃어만 넘길 수는 없는, 가슴 아픈 사자후였다. 기업들은 경력 같은 신입을 원한다. 일은 아주 잘 하지만 몸값은 싼. 구직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명백한 갑질이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아>라고 면접관의 얼굴에 써 있다. 물론 중소기업에게 적정 마진을 보장하지 않는 대기업의 횡포가, 중소기업들이 구직자를 쥐어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건 그 쪽 사정이고, 어쨌건 구직자는 기분 나쁘다.
어떤 이들은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쉽게 이야기한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춰라. 중소기업에는 사람이 없어서 난리다. 우선 경력을 쌓고, 능력을 인정 받은 후에 더 좋은 곳으로 옮겨라.” 말은 쉽다. 참고, 견디며, 노력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젊은 세대들 또한 길거리나 고시촌에서 방황하기보다는 어엿한 회사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급여나 복리 후생, 향후 경력 개발에 있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는 이미 벌어져 있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는 사회적 문제이다. 기성 세대가 만든 사회적 문제를 왜 청년들이 온몸을 바쳐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3~5년 정도 일도 배우고 능력을 인정받아서 이직을 하라고? 3년 일하고 회사 옮기는 구직자들을 배신자, 메뚜기로 낙인 찍는 사회가 아니었는가?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연과 설명회를 통해 구직자들에게 주문한다. 눈높이를 낮춰서 취업하지 말고, 역량을 길러 좋은 곳으로 취업하라고. 경력직 같은 신입만 뽑는 상황에 무슨 수로 역량을 기를까? 필자는 신입으로서 업무 용량을 보여주는 방법은 공모전과 인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모전으로 자신의 실력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분야는 디자인 관련 분야로 한정된다. 재무, 인사, 영업 등의 업무와 관련된 공모전은 전무한 상황이다. 결국 인문계열 구직자에게는 인턴을 통해 본인의 역량을 키우고 증명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인턴을 하게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얼마나 되나요?> 인턴 이야기가 나오면,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여기에도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국내 기업들은 분명 <신입사원>을 뽑아야 할 자리에 <인턴>을 뽑는다. 무려 1년의 평가 기간을 두는 것이다. 스스로의 인사시스템에 대한 자신이 없으니, 일단 써보고 계약 여부를 결정한다. 업체 입장에서는 똑똑하다 생각하겠지만, 구직자 입장에서는 역시나 갑질에 다름없다. 1년 뒤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이들은 취업 재수생, 혹은 인턴을 전전하는 <인턴부장님>이 된다. 필자가 매칭하는 인턴의 정규직 전화 비율은 얼마일까?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0%다. 단 한 명도 정규직으로 전환된 적이 없다. 왜? 2,3학년 위주로 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1~2년뒤 더 좋은 회사에 취업 성공하는 경우는 많다. 필자가 생각하는 인턴이란, 말 그대로 학생 신분으로 직장 업무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향후 취업 활동에 도움이 되는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지, 결코 신입 대신 뽑는 인턴이 아니다. 인턴 과정을 통해 업무를 이해하고, 스스로 부족한 부분은 남은 학교 생활에서 보완하게 된다. 취업 전선에 나설 때가 되면, 이미 경력 같은 신입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턴은 인턴이고 사원은 사원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대다수 국내 기업에서 인턴이 하는 일은 복사하기, 서류 파쇄, 커피 타기 등이다. 물론 상징적인 비유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업무와 그리 높은 상관관계가 없는 일이다. 나갈 사람에게 어떻게 중요한 일을 맡기냐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다시 말해 귀찮은 일들을 <정규직>이라는 볼모로 구직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아닌가?
인턴이란 역량을 기르기 위해, 기업과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업무를 익히는 과정이어야 한다. 정직원으로 뽑히기 위해, 눈치를 보며 점수를 따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영어 실력 향상이 아닌 점수를 따기 위한 토익 학습은 시간 낭비다. 다양한 지식을 쌓지 않고, 학점을 관리하기 위한 벼락치기 기말고사는 의미 없다. 마찬가지로 경험을 위한 것이 아닌, 선발을 전제로 하는 인턴은 대다수 구직자에게 시간 낭비이고, 헤어날 수 없는 굴레이다.
필자가 근무한 해외 기업들은 인턴에게 고유의 업무가 주어진다. 기간은 6개월. 인턴 간에도 인수인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3개월의 시차를 두고 두 명을 뽑는다. 일을 배우는 과정도,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며 넘기는 과정도 직장 생활에서는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인턴은 심부름 꾼이 아니다. 업무의 난이도가 높지 않더라도, 회사의 비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인턴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팀동료들이, 가끔은 부서 전체가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게 업무 뿐 아니라 책임감까지도 배운다. 이런 인턴 경험을 갖춘 구직자들은 결코 <시켜만 주시면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제가 이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고, 어떤 성과를 낼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산업과 기업, 그리고 본인의 업무 범위와 역량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해외 인턴이 가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비용 문제이다. 직접 지원을 하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고, 에이전트를 통하려니 소개 비용이 만만치 않다. 기업들은 검증된 에이전트를 통해 인턴을 수급하고 싶어하지만, 역량이 입증되지 않은 인턴을 뽑는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에이전트들은 구직자들에게 소개 비용을 청구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급여가 매우 낮다. 유럽이나 호주, 미국 등은 그나마 어떻게든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은 지급된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법적으로 무급이다. 게다가 6개월이상 정부 지정 대학에 등록해야 한다. 돈 들여서 열심히 일하지만 보상은 없다. 싱가포르의 경우 인턴의 급여는 1000달러 내외이다. 싱가포르의 집값은 이니 400~500달러, 생활비도 그 이상이 들어간다. 동남아 여러 국가의 경우, 우리 돈으로 15~30만원 수준이다. <경력>만을 위해 해외인턴을 감행하기에는 너무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남는 역량은 엄청나다.
필자는 이 해결책으로 정부와 학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산업인력공단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턴 사업을 중단했다. 해외 취업사업을 하면서도, 해외 취업시장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정책 결정이다. 인턴을 한다고 취업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인턴 경력이 없으면 취업은 더 어려워진다.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의 성과만 추구하는 탁상 행정의 전형이 아닐까 한다. 더 많은 학생이 해외로 나아가, 선진 기술과 아이템을 배우고, 나아가 개방적인 자세로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면, 국가 전체적으로도 더 큰 결실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의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에게 실업수당을 지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청년들이 실업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전에 그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